서울에 있는 동안 과 친구들에게서 "스키장 가련?"이라는 유혹의 문구가 날라와 두말 않고 오케이를 했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아 화수였던 일정이 목금으로 연기되긴 했지만, 어쨌든 2년만의 스키장.
들뜬 마음으로 스키복을 비롯한 일체의 장비를 동생에게서 뜯어내고는
동기 7명과 함께 룰루랄라 무주로 향했죠.
설천은 처음이었는데 만선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더군요.
주간스키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는 다들 뻗어 있기를 두어시간,
갖은 구박을 하며 만들어 준 김치찌개와 함께 식사를 마치고
새벽 1시까지 통칭 "섰다"로 밤을 지새고
다음날 주간스키를 또 빡시게 타고,
무사히 대구로 돌아와서 돼지국밥으로 거하게 저녁을 마친 후,
다들 빠이빠이 헤어졌습니다.
정말 재미있었어요!!!
...라고 상큼하게 웃으며 끝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첫날, 초급자용 슬로프를 서너 번 탄 뒤, 슬슬 스피드가 익숙해졌다 싶어서 중급인 쌍쌍으로 올라갔습니다.
아슬아슬하게 부딪히는 걸 면해가며 신나게 스키를 타고 있는데,
골인 지점(?)을 조금 눈앞에 두고서, 갑자기 뒤에서 누가 절 덮치더군요.
하늘을 날아 큰 대자로 뻗으면서, 순간 "악!!!"하는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습니다.
스키 한짝은 벗겨져 멀리 날아가고, 저는 정강이를 부여잡고 끙끙댔죠.
보드의 엣지에 종아리를 정통으로 찍혀버렸습니다.
정말이지 순간적으로 다리뼈 부러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ㅁ;
정신차리고 신발벗고 바지를 걷어보니, 노란 고글 사이로도 선명하게 멍들어 있는 다리가 보이더군요.
상대방도 미안해 하고 있는데 그걸 보더니 뭐라 말을 잇지 못하더군요.
일단 전화번호와 이름을 받아 놓은 뒤 혼자서 끙끙대며 의무실로 향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쌍쌍에서 설천의 의무실까지는 꽤나 먼 거리...
혼자 걸어가면서 부축이라도 좀 해주지, 잡것!! 하고 투덜댔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조금 오버가 아닐까.. 싶네요;;
어쨌든 판정은 그냥 타박상.
저녁에 얼음 찜질 좀 해주라고 하고는 스프레이를 뿌려주고 압박붕대 감아주는 걸로 처치는 끝.
사실 스키타다가 이정도 접촉사고는 꽤나 자주 있는 일이니 저도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걸을 수는 있었으니까...
점심시간까지 20분 남았길래 그냥 주저앉아서 친구들을 기다렸습니다.
버너와 주전자를 가져와서 물을 끓여 컵라면을 먹으려고 했는데..
지대가 높아서 그런지 물이 도통 끓을 생각을 안하더군요;;
미적지근한 물을 그대로 부어, 딱딱한 컵라면을 씹어가며 점심을 마친후,
다함께 곤돌라를 타고 동생이 추천해준 실크로드 상단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몸이 기억한다"는게 무언지를 정말 체험해버렸습니다.
무서웠어요!!!! ;ㅁ;
실크로드 상단이 초급코스를 빙자한 중상급자 코스이기는 해도, 충분히 탈 수 있는 코스입니다.
재작년에도 만선의 장거리 중급자용 코스를 몇번이나 들락날락했으니
실크로드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고 당연히 생각하고 올라갔는데...
몇번을 쉬었는지 기억도 안나요.
마치 스키 타는 법을 잊어버린 듯, 허리에는 힘이 바짝, 다리는 후들후들,
경사가 그렇게 무섭게 느껴지다니... ;ㅁ;
특히 실크로드와 알레그로가 이어지는 지점에서는 양다리에 힘을 잔뜩 주고,
A자로 날을 바짝 세운 뒤, 실크로드 쪽 벽면에 바짝 붙어 슬슬슬슬슬.....
정말 기다시피해서 중간 리프트 지점까지 내려와서는, 도서히 더 내려갈 엄두를 못냈습니다.
결국은 리프트를 타고 다시 상단으로 올라가서, 곤돌라를 타고 내려왔어요.
그걸로 그날의 스키는 쫑.
다음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미 리프트권은 지불해 놓은 상태라 초급자 코스만이라도 들락날락 해보리라 생각했어요.
실제로도 실크로드 하단은 여러번 탔습니다.
그치만, 그 경사에도 겁먹고 빌빌빌빌.. 중간에 여러번 쉬었습니다.
경사가 완만해지는 어느 지점을 기준으로, 아래쪽은 그냥 자연스럽게 탈 수 있었지만
리프트에서 내려서 조금 급한 곳은 울면서 탔어요.
그렇게 무리 아닌 무리를 하고 났더니 결국은 푹 퍼지더군요.
2년만의 스키장이었습니다.
큰 마음먹고 상급자 코스도 도전해 볼까? 하는 생각으로 갔던 스키장에서
고작 한번 뒤에서 들이박힌 걸로 상급자 코스는 커녕 초급자 코스도 벌벌떨면서 탔다 왔다구요!! ;ㅁ;
같이 같던 일행들은 뒤에서 들이박히거나 심지어 폴대가 부러지는 접촉사고를 당하면서도
룰루랄라 즐겁게 스키를 타고 다니는데, 유독 저만 저런 소심하기 짝이없는 반응을.. 흑흑.
정말 그 잡것만 아니었어도!! 라는 생각을 몇번째 되풀이 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미 끝나버린 일인 것을요..... ;ㅁ;
하지만 역시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것은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오랜만의 "섰다"
8명에 2짝의 화투패.
두 팀으로 갈라서 고스톱도 그럭저럭 재미있겠지만, 그래도 같이 놀러왔는데 패를 가르면 재미 없잖아요.
해서 한 녀석의 제안으로 시작된 "섰다"(집에서는 "땡이"라고 합니다.)
돈 대신 땅콩, 녹차 티백, 커피 믹스, 나무젓가락을 칩으로 삼아서
다음날 아침 세팅, 아침 설거지, 점심 세팅을 걸고 여덟명이 정말 피튀기면서 "섰다"를 쳤습니다.
처음엔 여섯명으로 시작했는데, 자다가 일어난 두 명이 합세하면서 판이 점점 커졌더랬죠.
아침 세팅을 걸고 제일 먼저 나가 떨어진 언니가 딜러를 바꿔쥐면서
한동안 안나오던 패가 점점 잘나오더니 결국엔 대박을 치더군요.
언니의 뒤를 이어 한 녀석이 나가 떨어지기 직전, 마지막이라고 자신의 패도 안본 채
다른 사람들의 패만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녀석의 패가 뒤집어지는 순간
떡 하니 튀어나오는 장땡.
정말 이게 도박의 묘미(?)라는 걸 알아버리고 만 모두들. ^^;;
제일 먼저 오링났다고 슬프게 딜러를 하던 언니가 장땡이 나온 순간 태도가 돌변하더니,
딜러로서 무언가 해내겠다며 패를 돌리기를 한참, 결국엔 38광땡이라는 쾌거를 이루어 내더군요.
그 날 저녁, 언니가 잠들기 직전에 한마디를 던지더군요.
"다 이루었어."
어쨌거나 간만에 친구들과 함께 간 스키장은 재미있었습니다.
비록 올해는 저
잡것 때문에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빌빌빌빌 끝냈지만,
내년시즌에는 기필코!!!!
라고, 시커멓게 멍든 다리에 얼음찜질을 하며 결심을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스키장 가시는 여러분들... 부디 조심하세요~